여름 바람 속에서

창문 너머로 초여름의 바람이 교실 안을 스쳐 갔다.
선풍기 소리가 단조롭게 이어지는 가운데, 교탁 위에는 여름방학 계획표가 흘러내리듯 붙어 있었다.
“다음 주면 방학이네.”
옆자리 민지가 팔꿈치를 괴고 중얼거렸다.
나는 그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.
방학이라니. 기다리던 자유의 시간이지만, 묘하게 마음이 무거웠다.
그 이유는 너무 뻔했다.
앞자리에 앉은 수현.
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칼, 교과서에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듯 자꾸 연필을 돌리던 모습.
나는 그 모든 게 눈에 밟혔다.
‘방학 동안엔 매일 못 보겠지….’
그 단순한 사실이 왜 이토록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.
쉬는 시간, 민지가 내 노트를 툭 치며 웃었다.
“야, 이번에 수학 보충 듣지? 수현이도 신청했다던데?”
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.
“진짜?”
“응. 너 몰랐어? 같은 반 몇 명이랑 같이 한대.”
나는 대답 대신 노트에 연필심을 눌러 그어 버렸다.
민지는 내 표정을 흘끗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.
“…좋겠다?”
그 순간, 창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교실 커튼을 크게 흔들었다.
나는 그 바람 속에서 순간적으로 다짐했다.
이번 방학이 오기 전에, 적어도 한 번은 내 마음을 전하자.
종례가 끝난 뒤, 교실을 나서는 수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.
그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었지만, 내 발은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.
멀어져 가는 그림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.
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… 나의 여름은,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.